2010년 3월 21일 일요일

가족 -1 첫만남

"할아버지 저 다녀 왔어요"

 

"신혼여행 갔다 온겨?"

 

"할아버지 저 외국서 공부 하다고 돌아 왔어요..."

 

"오호 참 그렇지. 그래 어서 오너라. 그런데 니 처는?"

 

"할아버지 저 경락이예요. 아버지가 아니라."

 

"아 그래 닮았어, 닮았어.."

 

마지막 대화였다. 내가 유학가 있는 동안 치매가 심해지신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

할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낸 사랑하는 사람이였다. 

아직도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관이 화마로 들어가는 모습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오열하며 마지막까지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수없었다.

할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유리창에 기대어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0여년이 라는 시간이 흘러 하늘을 날으는 비행기의 유리창에 기대어 온갓 인상을

찌푸리며 먼발치의 대지를 바라보고 있다.  아직도 지난 몇일동안 어머니의 전화 독촉이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여보세요"

 

"엄마다."

 

"어 엄마. 어쩐일이야?"

 

"어쩐일은 뭐가 어쩐일이고. 왜 엄마가 아들한테 전화하면 안되나?"

 

"아니 그게 아니고... 왜 무슨일 있어?"

 

"꼭 무슨일 있어야 전화하나? 그냥 아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아 엄마 잠깐만 내가 하던 작업이 있어가지고. 이거 끝나고 바로 전화 하께"

 

"니를 어떻게 믿노. 잠깐이면 된다. 이번 재사때 올꺼재?"

 

"가야지 될수 있으면..보고 갈께"

 

"될수 있으면, 보고 또 안올끼네."

 

"아니 가야지.."

 

"단디 들어라. 이번에 니 안오면 작은 아버지들이 다시는 우리집에 안온다고 한데이

니 꼭 와야 된다. 알긋제."

 

"아 그래 알겠어  엄마...나 끊어"

 

<몇일 후>

 

"여보세요"

 

"니 표는 끊었나?"

 

"무슨 표?"

 

"야 좀 봐라 내가 말했잖아 이번에 꼭 와야 된다고."

 

"아 재사!"

 

"아 재사? 니 빨랑 내려오는 표 사거라 지금."

 

"아 그냥 차타고 가면 되지..무슨 걱정이세요?"

 

"또 뭐 피곤 하다느니 밤을 새세 운전을 못했다느니 하는 말할라면 치아라. 좋은 말할때

 표 사거라...얼른"

 

"알겠어..아 진짜 우리 엄마 징하다 징해.."

 

"뭐가 징하노 이놈아 내가 징하면 니는 무슨 징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지게"

 

"알았어요 어머니 소저를 믿어 주옵서서"

 

그리고 오늘 아침에 전화벨 소리에 잠에 깼다. 액정에 뜬 어머니란 단어가 보이고 머리속

으로 재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정리 되지 않은 방안에 저편으로 노란 서류 봉투에 적힌

오늘 날짜의 마감시한 글씨가 보였다. 머리를 감싸쥐고는 이 총체적 난관을 어떻게 극복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전화 벨소리는 멈췄지만 한동안 엄청난 고민의 늪이 밀려 왔다.

나는 생계형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디자이너로써의 자존심보다는 당장의 한끼를 위해

일이 크건 작건 좋은일이던 나쁜일이던 닥치는 되로 맡아했다. 거기다가 유학생활을

통해 습득한 언어를 이용해 번역일도 하고 있었다. 나 같은 아르바이트를 두잡 하는

생계형 디자이너에게 신용은 생명과 같다. 신용이 깨지면 일거리는 줄어 들기 시작하다가

결국에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되는것이 이바닥의 생리였다.

그렇다고 재사에 참여하지 않기에는 너무나도 크나큰 양심의 가책과 말없이 먼산을 바라

보는 아버지의 얼굴과 어머니의 눈물맺힌 눈이 떠올라 힘들었다.

그때 문자 한통이 왔다.

 

"올해가 할아버지 10주기다. 오늘이 기일이고"

 

 

녹슬어 페인트칠이 벗겨진 허름한 철문앞에 섰다. 벨을 누르려다가 손을 내려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당긴다. 한번 세개 빨아당긴 담배연기를 한숨과 함께 내쉰다.

집에 도착하니 아직 다른 식구들은 도착전이였다. 어머니가 재사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나를 맞아 주셨다. 물론 수없이 많은 잔소리와 함께.

오랜만이다. 사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집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최근 몇년동안

은 다섯손가락에 들정도만 왔을 뿐이였다. 그때마다 바쁘다 피곤하다 어쩔수 없다 등등의

핑계를 되면서 회피했었다. .

대충 가방을 던져놓고는 부엌으로 향한다.

 

"엄마!!!"(웃으며)

 

"니는 웃음이 나오나?"

 

"아니 안나오는데."

 

"니는 이제 아부지한테 죽었다."

 

"어이구 아부지가. (아부지 흉내내며: 어 왔나? 왜 오지 말지.) 이게 다일껄"

 

"그거야 느그 아부지가 경상도 남자라 그런거고 니 없을때는 내한테 얼마나

  말 많은줄 아나. 너그 아부지 니한테 불만 많다. 많어."

 

"그나 저나 아버지는 어디 가셨나?"

 

"가게 가있다. 안그래도 니 마중나갈끼라고 아침부터 설치드만 전화가 안와가지고

 삐치가 가게 나가드라"

 

"아버지가 설마. 엄마는 이상한 능력이 있어 사람 미안하게 하는 능력"

 

"하모. 미안해 해야지 안그렇나? "

 

"알았어 미안해요..미안해 조여사님. 봉변 당하기 전에 밀린 일이나 해야 긋다."

 

"얼른 해라. 또 식구들 다 있는데 일한다고 앉아갖고 청승 떨지 말고 "

 

"아이고 알았어. 내가 이러니깐 .."

 

"이러니깐 뭐?"

 

"조여사를 사랑할수 밖에 없다고"

 

"으이구 참나"

 

"우리 조여사 웃으니깐 얼마나 예뻐.."(엄마를 안으며)

 

"치아라 징그럽다."

 

 

이곳은 사방을 둘러보면 아직까지도 할아버지가 묻어 있다.

할아버지가 모아둔 갖가지 장식과 사진들이 여전히 장식된채 세월을 보내 퇴색되어 졌을

뿐이였다. 그중에 할아버지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인다. 멋쟁이였던 할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서있고  , 반바지 차림에 솜사탕을 들고 있는 어린 내가 그옆에 무표정이 서있다.

 

 

오늘 저녘이 마감인 디자인 작업에 한참 열중이였다. 어느새 사방을 둘러 보니 식구들이

와 있었다. 무의식중이라 옛날 한때의 모습과 똑같은 관경이라 그때로 돌아 간것이라고

착각을 할정도 였다. 의식은 점점 돌아왔다. 이미 작은 아버지들은 나의 행동에 심한

불쾌감을 가지신 듯 했다. 나는 컴퓨터를 덮고 무료한 그 대화에 동참해야 할때임을

직감했다. 그래 오늘만 참으면 돼... 오늘만..

어김없이 작은 아버지들의 공격은 거세게 전개되었다. 결혼은 언제 할꺼냐? 내가 장자, 장손

으로써 가문을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해서는 안된다. 자주 가족 모임에 참여해야한다.

등등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였다. 내 의식은 날아 올라 다른 곳을 향하고 눈에 보이는

피사체들이 흐릿해졌다가 또렷해졌다가 한다.

 

향이 불타 오른다. 연기가 하늘로 향한다. 특유의 향이 나의 코를 찌르고 술잔이 돌려

진다. 절을 올리는 동안 할아버지에게 얘기를 걸어본다. 한번에 말하기에는 너무 길어

두번에 걸쳐 쪼개어 말한다.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고 있었으면 한다. 그동안 잊고

지내 미안하다고 마음속으로 말해 본다.

 

어느샌가 가족들과 노래방에 왔다. 술이 꽤 취하신 아버지는 나에게 다가와 노래방 책자를

던져주고는 부르라고 성화다.

 나의 온 신경은 시계로 가있다. 마감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수번 몰래 나가려고 시도 했으나 그럴때마다 철저하게 수비하는 우리 가족 덕분에

정신과 육체가 분리됨을 느꼈다.

 

다시 장소는 옮겨져 집에 와있지만 일을 할수는 없다. 끈질기게 늘어지는 작은 아버지들과

이제는 술이 취하신 아버지 까지 합세해서 내가 강의를 시작한다. 이제는 할아버지까지

동원된다. 할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왜 내가 잘해야 하는지...

나의 정신은 온통 마감 시한에 가있다. 내 시선은 점점 흐릿해 지고 그들의 말의 강세가

뒤죽 박죽되어 몽롱하게 나를 만든다. 머리속으로 생각 한다. 그래 할아버지는 나를 사랑

하셨어. 첫 손주를 위해 똥기저기를 빨아주셨던 그 할아버지. 그렇게 무뚝뚝하셨다는 분이

나에게는 언제나 웃으며 감싸 주셨었지.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한 가족들, 그리고

내앞에 술취하신 아버지만 남아 있다.

 

"니 힘들제?"

 

"뭐가요? 아니요"

 

"내가 니 마음에 한을 안다. 미안하다 아부지가"

 

"아부지가 왜 미안해요? 왜 그래요"

 

"이러는게 마음이 않편하제?"

 

"안 편하기는 뭐가요. 그만드세요...주무세요"

 

"그런데 경락아 니가 유학 가있는 동안 할아버지가 그렇게 니를 찾았다. "

 

"......"

 

"니는 혼자가 아니다. 가족이 있........."(테이블에 엎드려 잠드시는 아버지)

 

 

방안에 돌아오니 꼬마 사촌 녀석이 노트북으로 게임을 했던 모양이다. 데이타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허탈해 졌다. 녹슨 대문앞에 나와 담배를 피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서울로 올라와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에야 나의 삶은 다시 예전과 같이 돌아왔다.

그동안의 신용으로 인해 하루 늦어진 디자인은 문제가 아니였지만 일정 자체가

밀려 버려 몇일을 빠듯하게 매꾸어갔다. 정신 없이 지내다가 마지막 파일을 보내고

나니 긴장이 풀려버린듯 녹아 내렸다. 맥주 한잔을 꺼내 들고 창밖을 내려다 보며

들이켰다. 정말 경치 하나는 끝내준다니깐. 이 경치 좋은 집을 유지 하기 위해

그간 마감기한들과 싸워낸것 아니겠어. 비록 내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산중턱이긴해도

이런집이라면 유지하기에 보통일은 아니니깐. 어느새 맥주 한캔은 비워졌고

두번째 캔을 들었다. 창문을 열고는 창문틀에 겉어앉아 아래를 바라 보았다.

2층이라 그리 위험하지 않아 나는 종종 이렇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런 행위들이 나에게는 일종의 자유로움의 표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가로등불아래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쓰레기 더미인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람의 형상이였다.

분명한것은 그쪽이 나를 응시하고있다는 것 정도였다. 가로등불아래있어

그림자로 인해 식별하기 어려웠다. 왠지 나의 자유를 침범 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그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졌다.

한참을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단지 다른것이 있다면 그는 나를 제대로 볼수 있지만

나는 그럴수 없었던 것이랄까. 그리고 그 존재는 조금 뒤로 물러나 형태를 보여주었다.

조금 오래된 옛 양복에 노인이였다. 몇번을 보고 또 보고 난뒤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할아버지 였다.

 

10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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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리에서 불현듯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처음의 이야기는 지금의 내용과 많이 달랐다.

    몇일간 큰  골격과 구성들에 대해 완성 결과물의 시작이 바로 이글이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뚝심있게 연재 해보려고 한다.

 

댓글 2개:

  1. 어디 유학 하셨나요?^^

    외국 사시다 한국 가신분 만나니까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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