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1일 일요일

Tully 털리 바나나농장!! 체력적 굴욕

말리바에서의 곤혹으로 피곤한 마음에 몸을 이끌고 라군근처 벡팩에 머물며 정말이지 가기 싫었던 털리로 행선지를 정했다.

왜 가기 싫었느냐? 바나나는 맛있다. 그러나 바나나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점에서 볼수있는 한손이 커다란 막대에

여러손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이였다.

한 외국인 벡팩커가 털리에 있다가 왔다고 했다. 바나나의 무게는 무려 70KG 정도 야자수같은 바나나 나무는 유영해서

자라기전 줄기꼭대기에 끈을 매어 놓고 다자라면 그끈을 잡아당기면 휘어진다.

나무를 휘어서 험핑어라 불리우는 워커의 어깨에 걸터지면 나무와 막대기가 연결되는 부분을 잘라 버린다.

그러면 고스란히 70Kg가냥의 바나나가 픽커의 어깨를 누른다.

단 7일이였다고 했다. 그 외국인은 건장한 체격의 서양인이였고 나보다 몇배는 힘이 세어 보였다.

과연 할수 있을까?

털리의 버스 정류장 근처에는 검부츠라고 커다란 장화조형물이 있는데 털리에 역사상 최고강우량일때 높이라고 한다.

정말 웃긴 취지의 조형물이였다.

거기서 가까운곳에 카라반 파크가 많이 있고 타운쪽으로 들어가면 벡팩커가 많이 있다.

털리는 1년 365일 바나나가 열리고 지는 곳이라 항상 벡팩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다.

그래서 숙소는 많이 있고 가는 즉시 취직된다. 단 당신의 몸이 아작날수도 있다.


또다른 주의 사항으로 바나나진액이 옷에 묻으면 시간이 지나면 고동색으로 변질되어 절대 빠지지않는 얼룩이
 
된다는것이다.

카라반 파크중 개구리 모양이 있는 곳을 골라 들어 갔다. 소문처럼 쉽게 일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숙소 비용은 좀 비싼 편이였다. 픽업까지 포함된 금액이며 시내 한 곳에서 바나나농장에서 직접 픽업해간다.

자세한 사항은 카라반 관리인이 자세히 브리핑해 줄 것이다.


나의 경험은 이렇다. 첫째날 죽을것 같았다. 너무 무거웠고 너무 날씨가 습했다. 숨이 차올라 미칠것같았다.

축축한 땅을 짚고 내 순서가 되면 험핑을 해서 길다랗게 이어진 차로 옮긴다.

그것이 재수에 따라 가까울수 있고 멀수도 있다. 험핑외에 커터라고 있는데 그들은 아주 날카로운 무어인의

도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며 바나나 가지를 짤라준다.

그리고 끈을 당겨주는 사람이 있다. 보통의 커터나 끈을 당겨주는 역활은 지역주민으로 베테랑들이 주로 한다.

벡팩커는 험핑을 하는 일을 한다. 그야말로 나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맛보게 했다.

그리고 항상 조심해야 할것이 바나나를 둘러싼 비닐 사이에 또아리트고 있을지 모를 뱀이였다.

축축한 땅은 나의 신발을 적셨고 발을 무겁게 했다.

습한 공기는 숨쉬기가 점점 어려워 졌고 시간은 정말이지 1/10초로 나뉘어져 흐르는 듯했다.

몸은 무거워지고 하늘이 노래졌다.

가까스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몸살에 시달렸다.

처음 카라반에 도착해 영어 공부하는 셈하고 10불을 주고 빌린  TV를 보지도 못하고 누워서 잠을 청했지만

허리의 통증이 나를 침대에서 도저히 잘수 없게 만들어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천근 만근의 몸을 이끌고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수많은 악마와 천사가 머리속에 싸워 천사가 이긴 모양이다.

픽업 트럭에서 생각했다. 이거 못하겠다. 이러다가 병신 되겠다. 내 정신력이 나태해서일까?

내가 너무 병약한 것일까?

아무튼 난 내리자 마자 슈퍼바이져에게 나의 허리가 이일을 할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그래서 포기해야겠다

미안하다. 라고 했다. 첫날 많은 얘기를 나눈 애보리진이였는데 나보고 잭키찬을 닮았다고 해서 친해졌었다.

걔다가 우리 카라반파크에서 거주해서 그날 밤 허리를 싸매고 있는 나에게 맥주를 권하기도 했었다.

나는 쓸쓸히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버스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석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나를 쉐드장에 소개 시켜 주었다.

아!!!쉬운일!!! 고마운 녀석이였다,..더이상의 험핑은 없었다.

 

내가 쉐드장에서 하는 일은 아주 쉬운일이였다. 바나나가 상자에 담겨오면 뚜껑을 닫는 것이였는데.

하루 종일 하려니 좀이 쑤셨다. 수많은 바나나 상자가 밀려오고 나는 상자 뚜껑을 닫는다. 옆에 있는

호주아주머니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만 난 제대로 다 듣지 못한다.

라디오의 음악소리와 DJ의 멘트들이 흘러나오고 여전히 바나나상자는 넘쳐나온다.

상자뚜껑을 닫는다. 그렇게 몇일을 보냈다. 쉬운일들이 였다. 하지만 시간이 무진장 길게 느껴 졌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힘들지도 않고 나에게는 돈이 필요 했다.

재수 좋게 이자리를 얻어 몸이 병신되지 않고도 돈을 벌수 있었으니

사실 많은 몇몇의 한국 남자들이 험핑을 하고있었다. 그들은 견뎌냈고 죽을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다시 한번 나의 병약함을 체감했다.


몇가지의 다른 일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바나나 송이들이 다떨어져나간 막대를 버리는 일 ㅎㅎㅎ

그리고 최고 였던것은 길다란 막대에 작은 칼이 달려있는 것을 들고는 밖으로 나가

어린 바나나 열매들을 좀 잘라 주는 것이였다.

그래야 좋은 품질의 바나나가 열린다는 것이였다.

대개 일은 여자들과 했으며 걔증에 예쁜 애보리진들도 있었다.

물론 혼혈같긴 했지만 뷰티풀했다.



털리는 두번째 방문이였다. 캐언즈에서 레프팅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적이 있기 때문이였다.

그때는 혹시라도 내가 이바나나들을 따게 될지 몰랐었는데...ㅎㅎ

그렇게 조금은 지겹지만 쉬운 털리의 농장생활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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